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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가 아름답다

효자송도선생정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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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주소
    울산광역시 중구 동헌길167(북정동)
  • 문의처
    052-290-3650
  • 종목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
    1998-10-19

소개

  • 송도(宋滔)는 연안송씨로, 조선 초기 울산에 살았던 효자이다. 선생은 울산 지역 최초의 생원(生員)으로, 병든 부모를 10여 년 동안이나 정성껏 간호했다.일례로 눈먼 어머니가 생선회를 먹고 싶어했으나 구할 수 없자 물가에 나가 얼음을 두드리며 울었더니 붕어가 뛰어올랐고, 제사에 쓸 제물이 없어 근심하자 꿩이 날아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1년 사이에 부모가 잇따라 돌아가시자 몸소 흙과 돌을 져다 무덤을 만들고, 6년간 유교식 예법에 따라 사당을 세워 신주를 모시고 새벽마다 배알하고, 때에 맞추어 제사지내는 시묘살이를 하였다. 당시까지 불교식 장례가 일반화된 상황에서 송도의 효행은 매우 두드러진 것이었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세종 10년(1428) 효자로 정려되고 표창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은『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등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이러한 선생의 효성은 중국에까지 알려져 명(明)나라 신종(神宗)으로부터 어제시(御題詩)와 홍문(紅門)을 하사받았는데, 효문동(孝門洞)이라는 마을 이름도 그러한 사실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연안송씨 족보에는 정려비가 본래 효문동에 있었으나, 임진왜란때 파손되었기에 영조 13년(1737)에 울산도호부 서쪽 연못 인근으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정려비 앞면은 '효자성균생원 송도지려(孝子成均生員宋滔之閭)'라 적었으며, 뒷면에는 송도의 효행을 기록하였다. 정려비 왼쪽의 깨어진 비석은 '강희임진(康熙壬辰) 팔월(八月)'이란 구절로 보아, 숙종 38년(1712)에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중구 우정동에 있던 비석과 비각을 2006년 동헌 및 내아로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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